2017년 8월 5일 토요일

채식 2일차

채식 2일차
 
라고 말해도 사실 많이 먹은 게 없어서 일지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7월에 한국 귀국 후 주위의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한 결심을 알리니 반응이 다양했다.
 
왜 채식을 시작하는지 궁금해 하는 친구, 자기도 관심이 있다는 친구, '그냥 고기 먹어..' 하는 친구, '나는 죽어도 못해'라는 친구 등등.
 
다양한 반응이 우리 사회의 고기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다.
 
사실 처음에는 '비건이 아니면 채식하는 의미가 없다.' 라며 강건하게 나가려고 했지만 제품표를 보며 지냈던 2주 동안 계란,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찾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게다가 그 제품 중에는 내가 아직 먹고 싶은 음식도 많아서...) 우선 '비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덩에 관해 설명하자면 오마이뉴스 기사를 덧붙이겠다.
 
'중국 연수를 하면서 정말 고깃덩어리를 피할 수 없었을 때는 덩어리만 빼고 고깃 국물에 섞인 야채만 건져 먹기도 하였고, 자전거 국토순례를 하면서 갈비탕, 설렁탕, 곰탕, 육개장 같은 식사가 이어져 나올 때는 고깃덩어리만 건져내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은 일도 있습니다. 어떤 채식주의자가 이런 선택을 덩어리를 피한다고 '비덩주의'라고 하더군요. 

 
지금 마음은 우선 설레고 채식을 함으로 지구가, 내 몸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된다.
 
 
참고:

2015년 11월 15일 일요일

2015년 11월 13일 파리

18명이였다가 45명이였다가 120명이였다가 127명이였다가 128명이였다가 129명이다.

사망자 숫자가 늘어날때마다 그 사람의 그 가족, 그 친구를 생각하면 세상이 그 만큼 슬퍼지고 부서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129명, 그리고 부상자들이 느꼈을 그 고통, 그 마음이 생각이나 눈물이 난다.

나 또한 그 한 명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 이렇게 글쓰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면서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 죄스럽기도하다.

친구에게 주위 식당에서 술집에서 총을 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나가거나 지하철을 타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몇 분째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창문만 바라봤다.

갑자기 사람들이 한 곳에서 우리쪽으로 달려오는 순간 술집에 있는 사람들 모두 순식간에 기둥 뒤, 화장실, 냉장고로 기어갔다. 잔들은 깨지고 바닥에 널부러 져서 엎드려있는 우리들의 살을 배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공포감은 그런 사소한 상처는 느끼지도 못 할 정도로 강력했다. 같이 냉장고 뒤에서 숨어있으면서 울음을 터뜨린 한 여자에게 친구는 "괜찮을꺼야.."라고 얘기했지만 정말로 괜찮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누군가 들어와서 그냥 총을 쏘면 이대로 끝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러면 그렇게 끝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몇 분 후 몇몇 사람들의 "괜찮아, 괜찮아" 하는 얘기를 듣고 우리 모두 사람들이 달려가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딜로 가야지 피할 수 있는지도 모른체 마냥 뛰다가 친구들을 잃어버렸다. 거리에 키오스크 뒤에서 어떻게 할지 안절부절 못하다가 앞에 보이는 작은 길로 들어섰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몇 번 페달을 밟은 뒤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다시 자전거를 세우고 무작정 보이는 차들에 다가갔다.

손님을 태운 택시를 세우고 집에 좀 데려다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택시기사는 이미 손님이 있다고 안된다고 했다. 그때까지 참던 울음을 터트리며 등을 돌리니 택시에 있던 손님들이 같이 타자고 하며 자리를 내주었다. 택시에 타고 한참을 울다가 택시기사 아저씨와 손님들의 위로로 마음을 추스리며 집에 도착했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저녁에 흩어진 친구가 전화와서 자기도 이렇게 무서웠던 경험은 생에 처음이라며 달리다가 잃어버려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제 프랑스는 나에게 어떤 나라, 파리는 어떤 도시로 남을까. 엠뷸란스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제발 살기를 죽을 힘을 다해 끝까지 살아주기를.

우리 모두의 세계가 부서졌지만 그렇다고 무너진건 아니다. 다시 서로 부추기며 두 발로 일어서자.

2015년 9월 7일 월요일

벙쪘다.

공부해야할 양에... 학교를 그만 다닌지는 생각보다 오랜시간이 지났다. 얘기인 즉슨 학교공부 안한지도 오래. 그렇다고 학부때 정말 열심히 공부 했나? 하면 함구..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공부 열심히 했던 시기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가고싶어서 공부했던 중3, 그리고 가족들이 이사가고 서울에서 엄마 친구네 집에서 얹혀살면서 집에들어가기 싫어서 도서관 갔던 고2인 것 같다.

게다가 한국에서 3개월동안 원없이 놀다가 다시 공부하려니까 당최 감이 안온다. 콩고에 있었을땐 그렇게 가고 싶은 학교였는데 막상 개강 일주일이 지나니 드는 생각은..

'학교가기 싫다..'

정말 나란인간 왜 이러지. 자꾸 내가 지금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만 찾는데 집중하는 나를 보는 기분은 참... 별루다.

내일 할일은 내일 하자라는 마인드는 버리고 내일부터 아니 오늘 저녁부터(저녁 다 지나갔는데?) 힘내자!

2015년 8월 23일 일요일

파리지엔으로 산다는 것

파리지엔으로 산다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 인듯 하다. 

파리에서 대중교통 이용할때 파리친구가 말해준 팁을 보자.

1. 모르는 사람과 눈 마주치지 말것
- 괜히 미친사람한테 한대 맞을 수도

2. 지하철 기다릴때는 감시카메라가 들어오는 자리에 서있을 것
-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감시카메라에 찍히니까

3.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싶으면 무조건 피할 것
- 괜히 엮겼다가 해꼬지 당할수도

4. 지하철에서 잘 생각은 하지도 말것
-다 털리는 수가..

5. 되록이면 커플, 아줌마, 가족 주위에 앉을 것
- 피해할 대상: 남자 혼자, 남자 둘, 남자 셋... 남자가 문제여

6. 항상 긴장할 것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떠나기 7시간 전

인생의 또 다른 챕터를 맞고 있는 나.
화이팅! 재미있게 지내자!

2015년 8월 14일 금요일

짐싸기

27살 나이치고 정말 많이 짐을 싸본 것 같다. 짧은 기간 사용할 짐, 긴 기간 사용할 짐. 다양하게 싸봤다.

근데 원 노하우도 안 생기고. 텅 비어 입을 쫙 벌리고 있는 캐리어를 보노라면 그냥 막막하다. 

또 2년 동안 사용할 짐을 싸야하는데.. 이번엔 다른 때 보다 유난히 짐을 싸기 싫다.

2015년 8월 12일 수요일

많이 서울 그리고 가끔 부니아

프랑스 갈날이 얼마 안남았다. 한국온지 벌써 3개월이 다 되간다.
생각할 시간은 적고 머리를 비울 시간은 많았다.
너무 좋았다 그래서 글도 안썼다. 서울이 너무 신나서.

부니아에서는 정말 나중에 내가 콩고에서의 날들을 그리워 할까 생각을 많이했다. 아니겠지... 절대 아니겠지.. 아니 그럴 수도 있으려나...?

콩고를 떠나니 부니아가 그립지는 않다. 다만 친구들이 그립다.

특히나 1년동안 나의 룸메이트였던 제인이 많이 생각난다. 제인은 아직도 부니아에 있어서 나의 부니아 특파원이 되곤 한다.
맞는 점, 안 맞는 점 다 있었지만 퇴근하고 전기도 없는 캄캄한 거실에서 촛불켜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구십퍼 센트는 동료 뒷담하지만 하하). 정말 나도 모르게 제인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됬다. 한국와서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다가도 '아 제인은 저랬는데,' '제인은 안 저랬는데'등등 제인 생각이 많이 난다.

그리고 우리집 가정부 이마니도 많이 생각난다. 한국에 와서 이마니처럼 티없이 맑게 웃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나이는 나랑 동갑이지만 벌써 3살(아마 4살 일수도?) 여자아이의 어머니였다. 항상 성실하게 항상 웃으며 살아가는 이마니. 내가 콩고를 떠날 때 많이 울었다.
재미있게 지내다가도 이마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이마니 딸은 잘 크고 있을까? 궁금하고 걱정도 많이 된다.

그리고 우리집 경비원 4명. 앨리, 존, 무기사, 윌리. 생각도 난다. 특히나 내가 기술적인 난관 (못질을 해야하거나, 집안에 뭐를 설치해야 하거나 등등)에 봉착했을 때 이때 앨리가 있었으면... 이때 존이 있었으면 잘 도와줬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윌리는 노총각인데 좋은 처자는 만났는지, 무기사는 대학생 막 학년 이였는데 졸업해서 취직은 했는지 궁금하다.

역시나 집 사람들, 가장 내가 가족이라고 느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언젠가 다시 콩고에 갔을때 꼭 웃으면서 같이 보내지 못한 나날들의 회포를 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