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9일 목요일

아는 척 다 해결 할 수 있는 척!

인턴으로만 계속 일해서 그런지 내 성격때문인지 많은 책임을 지는거에 익숙하지 않고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항상 그랬든 자기 확신, 자신감은 정말 필수적이다. 몰라도 아는 척 다 해결할 수 있는척 하다보면 그렇게 노력하는 중에 정말 다 아는 사람,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있을 것이다. 

더 많은 일에 관여할수록, 더 많이 내 의견을 피력할수록, 더 자신감 넘칠수록 나에게 기회가 오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도 그 사이 나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다!

현명하고 항상 좋은 조언을 해주는 다니엘 아저씨를 운전사로 만나 나는 참 행운인 사람이다. 주리 화이팅!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봉숭아물

피가 몰려서 조금은 아프지만 그래도 더 선명하게 물들이려고 실로 꼭꼭 한 손가락 한 손가락씩 묶었다. 진하게 물들면 이 봉숭아물이 첫눈이 올때까지 있어주기를 바랬다. 혹시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 이루어 달라고 빌 수 있으니까.

사실 킨샤사 공항에 도착하여 받은 콩고 사람들의 느낌은 '우락부락'이었다. 뭔가 충혈된 것 같은 눈빛에 말을 걸면 '넌 뭐야?'하면서 뒤돌아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이런 콩고 사람(특히나 아저씨)를의 이미지를 바꾼게 있으니 바로 봉숭아물이다.

처음 봉숭아물을 들인 사람을 본 것은 킨샤사에동료였다. 처음 만나면 여느 조직에 오랫동안 몸 담은 것 같은 느낌을 풍기는 눈빛에, 콤파스로 반원을 크게 그린 것 같은 배를 가진 동료였다. 하지만 워크샵 도중 같이 일하다가 우연히 본 그 동료의 손톱에는 봉숭아물이 들어져있었다.

군사 재판소 시찰차 온 계급 높은 아빠뻘 되보이는 군인 아저씨의 손톱에도, 재판소에서 총을 들고 군복을 입고 경비를 서는 경비아저씨의 손톱에도, 페인트 칠하는 노동자 아저씨의 발톱에도 봉숭아물이 들어져있다.

사진은 이투리(Ituri)구 법원 재판장님 손. 물들인지 제법됬는지 봉숭아물이 많이 올라왔다.

적응하는 중이지만 아직은 '저 중국인은 여기서 뭐하는거야'하는 콩고사람들의 눈빛은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저 여기서 일하는 한국인인데요."라고 이야기를 꺼내고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은 그 우락부락한 아저씨의 봉숭아물들인 손톱이다. '봉숭아물을 들인 걸 보면 이 아저씨도 첫 눈이 올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을 순수함을 가지고 있겠지.'라며 나 혼자 상상하면서 말이다.

일요일 오후에


주말인데도 토요일에도 사무실에 나가고, 이른 시간에 미팅을 잡은 당사자가 한 시간이나 늦게오고, 여러가지 불평불만이 많았다. 일요일에 실컷 이 불평불만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집에 걸어오는 길이었다.

고사리만한 손으로 한 손에 두 켤레씩 운동화를 들고, 어깨에는 끈으로 두 신을 연결하여 어깨에 두른 형제같아 보이는 두 아이가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기껏해야 큰 아이가 초등학교 5-6학년쯤 되보였다.

그 두 아이를 보니 실컷 공부하고 실컷 놀고 이제 20대 중반이 되서 정당한 돈을 받고 일하는 내가 뭐 불평할게 있다고 그렇게 투덜됬는지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게졌다.

일요일 오후 친구들과 한창 놀 시간에 두 형제가 그렇게 길을 다니면서 운동화를 팔고 있는 모습이, 걷다가 손가락에서 운동화가 미끄러지면 다시 주워서 다시 걷는 모습을 보니 내가 미안해졌다.

옆을 지나가는 나를 보고 니하오 시누와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또야..' 하면서 기분이 나빠졌을텐데 이 아이들 앞에서는 내가 아시아 사람인게 조금 고맙게도 느껴진다. 그나마 내가 아시아인이라 이 두아이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신기해할 일을 만들어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래도 나는 매일매일 불평하고 투덜되겠지만 하루의 끝에는 이 두 아이가 생각날 것 같다.


2014년 5월 8일 목요일

부니아에 비가 오면..

요 몇일 한국의 장마 뺨치는 비가 왔다. 헌데 비가 많이 온날 내가 알게된 것은 사람들이 출근을 안한다는 것...

우리 사무실도 그렇지만 관공서 또한 사람들이 10시가 되도록 아니 비가 그칠때까지 출근을 하지 않는다. (보통 출근시간은 8시) 

이유인 즉슨.. 비가 오면 집에 틀어박혀 있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겠지만 이동 수단이 없어서 이다. 

부니아에서는 대중교통은 존재하지 않고 '걷기' 아니면 '오토바이 택시' 이렇게 두가지 방법 밖에 없다. 헌데 비가 오면 오토바이 택시들이 운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도 출근을 할 수가 없어 진다는 논리.

오늘 10시에 동료가 같이 부니아의 가족부(Bureau de genre famille et enfant)에 가기로 했지만 황당하게도 동료도 출근을 안했고, 가족부 사람들 또한 아무도 안왔다.

대중교통이 없는 부니아에서는 비는 모든 활동을 멈추게 한다. 


2014년 5월 7일 수요일

한 달만에 찾은 고마


한 달만에 다시 찾은 고마에서는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이 있으니 바로 헬멧.
오토바이 택시들이 손님이고 운전사고 모두 빨간 헬멧을 쓰고 있는 것이다. 동료에게 물어보니 오토바이 택시 범죄가 많아 최근에 식별번호를 적은 헬멧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빨간 헬멧에 하얀 페인트로 칠한 번호들이 보인다.



검은 먼지와 잘 닦여지지 않은 길은 여전하다. 오랜만에 고마를 휴가차 찾은 운전사 아저씨는 운전을 하면서 궁시렁 궁시렁 뭐라고 하신다. 알고 보니 지금 달리는 이 아스팔트가 안깔려 울퉁불퉁하고 먼지가 가득한 길이 새 주지사가 오기 전에는 아주 잘 닦여진 길이였다고 한다. 새로운 주지사가 이 길을 다시 더 잘 닦겠다고 공약을 세우고 주지사로 당선된 후에는 원래 있는 길을 다 들어내기만 하고 4년이 지난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라고 한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돈독한 나라가 어디 있겠냐만은 콩고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정말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게 느껴진다.

2014년 5월 1일 목요일

세월호와 국무총리 사임

고마에 워크샵을 왔다. 사실 이렇게 고마에 자주오게 될줄은 몰랐다 벌써 세번째.
워크샵 쉬는 시간 중에 동료 한 명이 한국의 국무총리가 사임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뭐때문에 나온 얘기냐고 되물으니 최근 세월호 사고로 국무총리가 사임했다는 뉴스를 읽었다고 했다(확인해 봐야하지만)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가슴이 와닿았다. 이런 사고가 있을때 정부가 책임을 지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권력이 있는 사람이 물러나는 그 사실 자체가 부럽다고 했다. 콩고에도 최근에 기차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들었다고 하니, 콩고에서는 이런 사고가 셀수도 없고 심지어 공기업에서 나는 사고에도 정부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요 몇일 많이 울었다. 표현 할 수도 없는 슬픈이 계속 올라왔다. 하지만 이 순간에 이런 한국에서도 배울점이 있다고 하는 콩고 동료의 말을 들으니 만감이 오갔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