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몰려서 조금은 아프지만 그래도 더 선명하게 물들이려고 실로 꼭꼭 한 손가락 한 손가락씩 묶었다. 진하게 물들면 이 봉숭아물이 첫눈이 올때까지 있어주기를 바랬다. 혹시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 이루어 달라고 빌 수 있으니까.
사실 킨샤사 공항에 도착하여 받은 콩고 사람들의 느낌은 '우락부락'이었다. 뭔가 충혈된 것 같은 눈빛에 말을 걸면 '넌 뭐야?'하면서 뒤돌아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이런 콩고 사람(특히나 아저씨)를의 이미지를 바꾼게 있으니 바로 봉숭아물이다.
처음 봉숭아물을 들인 사람을 본 것은 킨샤사에동료였다. 처음 만나면 여느 조직에 오랫동안 몸 담은 것 같은 느낌을 풍기는 눈빛에, 콤파스로 반원을 크게 그린 것 같은 배를 가진 동료였다. 하지만 워크샵 도중 같이 일하다가 우연히 본 그 동료의 손톱에는 봉숭아물이 들어져있었다.
군사 재판소 시찰차 온 계급 높은 아빠뻘 되보이는 군인 아저씨의 손톱에도, 재판소에서 총을 들고 군복을 입고 경비를 서는 경비아저씨의 손톱에도, 페인트 칠하는 노동자 아저씨의 발톱에도 봉숭아물이 들어져있다.
사진은 이투리(Ituri)구 법원 재판장님 손. 물들인지 제법됬는지 봉숭아물이 많이 올라왔다.
적응하는 중이지만 아직은 '저 중국인은 여기서 뭐하는거야'하는 콩고사람들의 눈빛은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저 여기서 일하는 한국인인데요."라고 이야기를 꺼내고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은 그 우락부락한 아저씨의 봉숭아물들인 손톱이다. '봉숭아물을 들인 걸 보면 이 아저씨도 첫 눈이 올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을 순수함을 가지고 있겠지.'라며 나 혼자 상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