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라는 세월이 갔다. 나는 일년동안 한살을 더 먹었다. 26살에서 27살. 살아있어야만 나이를 먹을수 있다. 그래서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다는게 미안하다.
작년 그날 나는 우간다에 있었다. 처음 받는 휴가로 들떠 있을때 우간다의 호스텔에서 뉴스를 봤다. 뉴스를 보고, 보고 또 보고, 그 다음날 사파리투어를 가야하는데 마음이 불안해서 가기가 싫어졌다. 그래도 가서 동물도보고 폭포도보고 사진도 찍었다.
콩고에 돌아와서 모든게 싫어졌다. 여기와서 뭐하고 있는건지,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여기와서 뭐하는 건지. 메일을 확인하고 워드를 키고 하는것이 무슨의미가 있는지. 모든게 정말 의미가 없어졌다.
어떻게하면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질지. 안가던 교회도 가봤다. 근데 다들 노래를 부르고 춤을추고 즐거워보였다. 그래서 조금 화가났다. 그리고 더 슬퍼졌다.
그 다음 휴가는 남아공으로 휴가를 갔다. 배를 탔다. 구명조끼가 어디에 있는지 먼저 찾아봤다. 조금 토할 것만 같기도 했다.
가을에 한국에 들어가서 시청앞을 지나다가 세월호 희생자분향소를 지나갔다. 이제서야 와서 미안했다. 사진속의 아이들의 얼굴을 볼수가 없었다. 얼굴을 보면 말을 걸 것 같아서 얼굴을 보면 교실에서 조잘조잘 수다를 떠는 모습이 보일 것 같아서.
그리고는 1년이 지났다.
페이스북을 켜지 않았으면 1주기인지도 몰랐을 것이었다. 미처 다 읽지못한 ‘눈먼자들의 국가: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책을 다시 폈다. 그리고 1년전 그날은 생각해본다. 그리고 학생들을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가 앗아간 그 아이들을 생각해본다. 교실에서 졸음을 참으며 수업을 듣고 있었을, 친구들과 쉬는시간에 수다를 떨었을, 야자를 하고 있었을, 고3이라는 압박에 조금 스트레스도 받고 있었을 그러면서도 대학 생활은 어떨지 기대하고 있었을..
마냥 슬퍼하다가도 마냥 슬퍼해서만은 안된다. 슬퍼하기만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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