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9일 일요일

부니아 감옥

라디오 오카피를 소개하느라 사이트에 가보니 오늘 제일 큰 기사가 2013~2014년 동안 부니아 감옥에서 열악한 환경때문에 40명의 수감자가 죽었다는 기사이다.



부니아 감옥은 여러 번 가보았다. 특히나 수가 많은 남자 수감자들이 있는 감옥은 앉을 공간마져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220명이 수감될 수 있는 감옥에 1300명 가량이 수감되어 있으니 직접 가보지 않아도 그 환경은 짐작 되시리라.

부니아 감옥 외관.

부니아 감옥의 행정건물.

행정건물 안 서기과 모습.




라디오 오카피

한국에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바로 '콩고 소식은 어디에서 들어야 하지?' 였다.

동료 지젤을 비롯한 많은 동료들의 대답은 바로 라디오 오카피(radio okapi)였다.
le potentiel같은 곳도 있지만 편항되지 않고 나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의견에서 였다.

http://radiookapi.net/

여기 링크.

찾아보니

"Radio Okapi est la radio des Nations unies en 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 co-gérée par la Monuc et la Fondation Hirondelle."

라디오 오카피는 2002년에 처음생겨 콩고 유엔미션인 monusco과 제비재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름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 있는 듯.

콩고의 간판들

콩고에서 한 가지 쏠쏠한 재미는 바로 손으로 그린 간판 구경. 콩고에서는 컴퓨터 글씨나 사진이 간판으로 쓰이기에는 아직은 이른 듯 하다.

특히 미용실 간판이 제일 재밌다. '진짜 잘그렸다' 하는 그림도 있지만 '우아 진짜 여기에서 머리하긴 싫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 그린 그림을 볼 땐 정말 풋 하고 웃음이 나온다.

보통 사람 많은 곳에 간판이 있으니 사진을 찍기 어렵지만, 콩고 미용실 간판 그림만 모아놔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

우선 오늘 찍은 간판 몇 개




출장 풍경


이번 출장은 워크샵, 교육이 아닌 우리가 지원하는 사업이 어떻게 되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출장이여서 남 키부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출장의 일정은

고마(Goma)-부카부(Bukavu)-우비라(Uvira)-피지(Fizi)-(바라카(Baraka))- (부줌부라(Bujumbura))-칼레해(Kalehe)-부카부-고마

였다.

출장 간다고 해서 시골로 갈까봐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내가 있는 부니아가 오히려 더 작았다.

부카부는 키부주의 수도였던 만큼 엄청크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고는 유엔 차 밖에 없는 부니아와는 달리 부키부는 빵빵소리와 차, 오토바이, 미니버스 등으로 도로가 조용할 틈이 없었다.

우비라는 약국이 많은 곳으로 기억에 남았고, 피지는 산 언덕에 있는 조금한 지역으로 기억됬다.

부줌부라는 해변이 있는 휴향지 플러스 아직은 오토바이보다 자전거가 쓰이는 정겨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장 중 사진 몇 장을 남긴다.

피지가는 길 거대 웅덩이 발견, 유엔차가 커서 다행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다시 나타난 거대한 웅덩이, 넘어진 트럭 옆을 지났갔다.

가는 길, 소 떼 발견!

콩고 소라 그런지 다들 말랐다.. 대신 콩고 소들은 뿔이 아주 길고 멋있다는 점!

전기 가스가 그리 흔하지 않은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석탄을 모아돈 포대

피지에서 만난 아이들, 콩고 아이들은 외국 사람들을 보면 모뉵 모뉵!하면서 외친다.
모뉵은(monuc)은 콩고 유엔미션인 monusco의 옛이름.

항상 유엔 차만 타고 다니지만 막상 차 앞에서 사진찍을 일은 많이 없다. 그래서 찍은 한 컷!

칼레헤 가는 길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 지젤에게 한 컷 부탁했다. 저 뒤에 있는 섬은 이주위 섬...? 
재미있는 선전 간판이 있어서 찍었다. 크게 보면 FARDC(Forces armées de la 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 콩고민주공화국군대가 콩고 사람들을 온갓 폭력(칼, 총, 수류탄)으로 부터 지키는 간판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콩고민주공화국군대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필요한 현재 상황(콩고군인이 행하는 성폭력 등)을 반증하는 것 같아 재밌다.

서쪽 콩고 사람들과 동쪽 콩고 사람들의 차이는?

출장내내 한 차를 타며 이동한 지젤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 중에 하나는 콩고에서 서쪽사람과 동쪽 사람들의 차이.

지젤의 말에 따르면,

서쪽 사람은

직설적이고, 조금은 무례하고(링갈라어에도 딱히 공손한 표현이 없다), 책임감이 덜하다고 한다. (40대가 되도 부모님집에서 지내는 사람들 같이)

반면 동쪽 사람들은

조금 더 신중하고, 말수가 적고 대신 위선적일 수도 있고(사람들 뒷 말하기, 사람들끼리 보복하는 경우가 많은 점) 책임감이 강하다고 한다.

아직 서쪽 사람들은 대할 경우가 적어 이게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두고 볼 일이다.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루슈루(Rutshuru)

르완다 국경을 지나는 길에 콩고 고마에서 사는 동료 지젤이 웃는다.

이유를 묻더니 르완다 국경에서 도장을 찍어주는 르완다 아주머니가 지젤이게 "왜 르완다 사람이 콩고에 있어, 남편감 소개해 줄테니까 르완다로 돌아와." 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지젤은 콩고에 루슈루(Rutshuru)라는 지역이 고향인데 그 지역 사람들는 키냐르완다어를 쓴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 때 마구잡이로 국경을 정하기 전에는 르완다, 부룬디, 콩고가 한 왕국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콩고 국경이 정해지면서 르완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키냐르완다어를 쓰는 루슈루지역 사람들은 콩고사람들에게 르완다 사람이라며 미움을 받는 다고 한다.

지젤은 스와힐리어가 훨씬 편하지만 고향의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키냐르완다어를 아직까지 사용한다고 한다.




우비라(Uvira)

하루만에 콩고-르완다-브룬디-콩고를 다니는 바람에 여권에 도장이 무지하게 찍혔다.

부카부에서 우비라(Uvira)로 가는 길, 콩고 내에서 차로 가는 길은 반군때문에 위험하기 때문에 르완다와 브룬디를 거쳐 콩고 우비라에 도착했다.



조금한 마을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우비라도 내가 있는 부니아보다 커보인다.

콩고에서 르완다 국경으로 들어가는 경유 비자는 30달러, 르완다에서 브룬디로 들어가는 경유비자는 40달러(3일 유효)였다.

브룬디에서는 오토바이대신 자전거를 많이 볼수있었는데 오토바이만 드글드글한 콩고와는 조금 더 정겨운 풍경이였다.

브룬디에서 콩고로 들어오는 국경에서는 프랑스인인 나의 상사 아마뉴엘을 어떤 방으로 데려갔는데, 알고보니 아마뉴엘이 혼자 온 외국인으로 생각하고 국제백신 증명서(?)를 안 가져왔다는 핑계로 벌금을 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쳤다. 나도 외국인인데 왜 아마뉴엘에게만 요구하는지, 언제부터 국경을 건널때 황열별 백신 증명서를 요구했는지 며느리도 모를 사정이다.

우리가 다 같이 온걸 알고, 변호사인 지젤이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냐며 따져서 돈을 뜯기지 않고 국경을 건널 수 있었다.







2014년 6월 22일 일요일

스텔런부시 와인 tasting


오늘은 새로운 걸 배웠다! 
화이트와인은 만드는데 6~9 개월이 걸리고 초록 포도로 만들고 레드와인은 15개월~2년 정도 걸리고 껍질이 붉은 포도로 만든다는 것.


부카부

고마에서 3시간을 배를 타고 남 키부(Sud kivu) 주의 주도인 부카부(Bukavu)에 도착했다.

부니아에 있다보니 고마에 오면 고마의 크기에 놀라고 이번에는 부카부의 크기에 놀랐다. 키부 주가 북/남 키부로 나누어지기 전에 키부주의 주도였다고 하니 그 크기가 고마보다도 크다고 한다. 그걸 증명하듯이 교통 혼잡도 어마어마 하다.



고마에서 일하는 상사인 아마뉴엘은 자기는 고마보다 부키부가 좋다며 부키부를 이탈리아에 비교했다. 이탈리아와 같이 보트모양으로 반도가 나와있다. 동료인 지젤의 삼촌은 사람들이 부카부를 손가락에 비교한다고 했다. 그 반도의 모양이 다섯 손가락이 나와있는 것 처럼 나와있기 때문이다.




콩고에 유엔 미션인 모뉴스코(MONUSCO) 안에는 유엔 국제 직원(외국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슈퍼마켓 같은 PX가 있다. 오늘 부카부에 있는 PX에 들렸는데 중국인 평화유지군 두 명이 나를 보고 "혹시 중국인...?(예측상)"라며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라고 대답해줬지만 나름 콩고땅에서 만난 아시아인이 내심 반갑기도 하면서 부카부에는 중국인들이 평화유지군으로 나와있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다.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희망봉에서

Breathtaking 이라는 형용사가 딱 맞았던 오늘하루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도 너무 아름다워 이게 진짠가 싶었던 그런 하루

투어로 camps bay 부터 hout bay를 거쳐 cape point/ cape of good hope (희망봉)까지 여행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테이블마운틴의 언덕에있는 kirstenbosch정원과 무슬림들이 사는 bocaap 마을도 들렸다.

Hout bay에서는 물개가 사는 섬에 배타고 다녀왔다. 인도사람들과 한 배를 탔는데 어찌나 시끄럽던지, 파도가 거세 배가 많이 출렁거렸는데 그 때마다 단체로 소리를 질러서 정말 리모콘이있다면 다 글씨가 다 없어질때까지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인도인들도 다 용서할만했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개들은 어찌나 요염하던지. 바다에 비치는 햇살도 보석을 뿌려놓은 듯 아름다웠다.

희망봉으로 가는 길 타조농장도 들렸다. 남아공에서는 타조 고기도 먹는다고 한다. 사실 오늘 저녁에 맛보았는데 조금 느끼하면서도 부드러웠다. 타조 가죽은 캥거루 가죽다음으로 질기다고 한다. 농장 안 타조 가죽으로 만든 지갑이 얼마나 탐나던지.

타조는 굉장히 멍청하다고 한다. 타조 눈알 무게가 60g인데 반면 뇌 무게는 30g이라고.. 새끼 타조들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용변을 볼때 날개를 쭉펴고 까치발을 하며 용변을 보는게 꾀나 우스꽝 스러웠다.

희망봉. 고등학교때 세계사를 배울때는 내가 희망봉에 갈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하물며 작년 스와힐리어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서 희망봉 얘기를 해주셨을때도 그 다음년도에 여기에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역시 삶이란! 높은 곳에서 인도양과 대서양을 바라보니 그 옛날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발견한 그 배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2014년 6월 12일 목요일

Robben island

넬슨만델라는 18년동안 robben island에 있었음

27년동안 감옥에


7개 cell
A 6개월 미만
B leaders of organizaion
C punishing room
D communal
E
F
G

감옥안에서도 백인 죄수와 흑인 죄수 차별 밥/ 옷

가이든 17살부터 terrorism이라는 명목으로 7년을 political prisionner로 있었던 분

의사는 한명,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씩 옮

넬슨만델라가 있던감옥

감옥에 있는 동안Long way to freedom 책을 썼음
원고를 빼았겼지만 나중에 minister of transport로 지정됬던 사람에게 복사본을 줘서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됨

7년 동안 있던 감옥들 지금은 가이드를 하는 심정은..?

200명정도 아직 살고있음
거의 gards 와 family


2014년 6월 9일 월요일

피터 아저씨

이번 airbnb를 이용하여 피터 아저씨와 마리아 아주머니 집에서 지낸 가장 큰 수확은 피터 아저씨와 대화일 것이다.

아들 셋을 두신 이 부부는, 두 분다 크로아티아 출신이다. 두분 다 10대 때 남아공으로 와서 지금까지 남아공 사람으로 살고 계신다. 크로아티아는 1년에 한번씩 2~3달씩 가신다고 한다.



피터 아저씨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은 분이다. 70대로 보이시는데,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한국의 바다는 차가운지 따듯한지, 무슨 물고기가 사는지, 한국사람들은 뭘 먹는지, 인구는 몇명인지, 무슨 회사가 한국 회사인지 등등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궁금해 하셨다. 나도 구글에서 정보를 찾으며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었다.

피터아저씨는 mechanical engineer로 평생을 일하셨는데 인공심장을 만드는 일부터, 남아공Koeburg에 위치한 유일한 원자력 발전소를 디자인하는데에 참여하셨다고 한다.


게다가 크로아티아에서 시집을 3권이나 내시고, 현재 피터 아저씨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679쪽짜리 역사 소설도 완성하셨다고 한다. 피터 아저씨의 아버지는 당시 공산주의 정권을 벗어나기 위해 남아공으로 가족들과 이민하셨다고 한다. 피터 아저씨가 남아공에 오신 건 59년, 14살 때 였다고 한다. 항상 서재에서 컴퓨터로 무엇을 하시기에 궁금했는데, 바로 이 소설을 퇴고하는 중이라고 하신다.




44년동안 일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쓰시는 철저한 분, 왕 어려운 수도쿠를 즐기시며 계속 머리를 쓰시는 걸 좋아하는 분, 호기심 가득하신 분, 매력이 넘치시는 분 이시다! 일주일에 두 번씩 봉사활동 처럼 크로아티아어도 가르치신다고 한다.

44년동안 일기를 쓰신 피터아저씨, 빨간 색은 좋은 일들, 파란 색은 걱정거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7일 일기는 다행히 빨간색 투성이이다^^

이번주 목요일에 크로아티아 대 브라질의 월드컵 경기가 있다며 부디 크로아티아를 응원해달라는 부탁을 하신다.

남아공과 주마 대통령

지금이 겨울인지도 모르고 왔던 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하면 떠오르는 것이라곤 아프리카에서도 백인이 많이 산다는 것, 넬슨 만델라, 팽귄도 산다는 것, 아파르트헤이트 정도 일 것이다.

사실 지금 겨울인지도 모르고 왔으니 부끄러울 다름이다. 남아공은 5월~8월이 겨울이다.
5월부터 8일의 최고기온은 18도이다. 

Couchsurfing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라고나 할까, 돈을 내고, 여행하는 나라의 가정집에 지낼 수 있는 Airbnb라는 다른 숙소의 형태를 접하면서 이번에 처음 이용해 봤다. 여행자들에게는 게스트를 위한 방이 따로 있다는 점과 현지인를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couchsurfing과 hostel의 단점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이리하여 피터와 마리아 아주머니가 사는 Camps bay의 집에 오게되었다. 피터아저씨가 직접 지은 이 집에 사신지는 37년이나 되셨다고 한다.






오늘 춥고, 비까이 와서 방콕하며 집에서 있었는데, 덕분에 이 분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지금 남아공 대통령은 '제이콥 주마'이다. 마리아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빈곤층을 위해 집을 짓기보다는 자신의 고향에 개인 사옥을 짓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결혼을 5번, 뉴스를 찾아보니 2012년에 6번째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현재 부인은 이혼한 부인, 자살한 부인을 제외하고 4명인 것이다.

70세 남아공 주마 대통령, 여섯 번째 결혼 2012.04.16

피터 아저씨께서는 주마 대통령이 한 번은 에이즈보균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것이 밝혀져 인터뷰를 하였는데, 자신은 에이즈를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방법을 물으니, 샤워를 하면 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또한 취임식에서 인사말부터 연설문을 달달 읽기만 했다고 한다. 다른 남아공 사람이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피터아저씨와 마리아 아주머니는 현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케이프타운이 조하네스버그보다 더 안전한 이유를 아마도 인종의 비율이 달라서라고 말씀하셨다. 조하네스버그는 흑인이 90% 백인이 10%정도라고 하고, 케이프 타운은 colored 60%, 백인 30%, 흑인이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피터아저씨가 colored라고 했을때 그 사람들은 어떤 인종을 가르키는 것이냐 물으니 남아공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 사람을 colored 라고 부른다고 대답해 주셨다.

2014년 6월 7일 토요일

케이프타운에 도착하자마자 숙소 아주머니가 추천해준 식당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앉아서 계속 먹기만 해서 속은 더부룩 하기만하고 그리 배가 고프진 않았다. 


덜덜 떨며 식사를 마치고 핫초코를 시켰다.


냉면을 넣어도 들어갈 만한 큰 머그잔에 핫초코가 나왔다.

먹고 마시니 돈을 내야하는데 아차, 여기 팁 내야하나 싶었다. 그래서 계산서를 달라고 하기전에 검색을 해봤다.

역시 찾아보길 잘했다. 팁은 보통 10%주는게 보통이라고 하고, 계산서는 펜과 함께 준다고 한다. 영수증의 total 부분에 팁이랑 함께 줄 돈을 적으면 웨이터가 그에 맞춰 거슬러 준다고 한다.


훨칠한 주인장 같아보이는 식당 아저씨가 친절하게 내 질문에 잘 답해주셔서 마음같아서는 20% 팁을 내고 나오고 싶었지만 택시비를 많이 썼기 때문에 다음기회에...

그 아저씨가 직접 펜이랑 같이 영수증 들고왔으면 나 오해할 뻔 *^^*

참고로 현재 1달러는 11란드(Rand)

부니아 공항 풍경

콩고에 온지 세달. 하지만 비행기는 정말 원없이 탔다. 한 달에 최소한 두 번씩은 탔던 것 같다.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부니아 공항도 (이게 공항이야? 싶어서 신기했었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두 번째 휴가를 가는 김에 부니아 공항 풍경을 남겨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부니아를 오가는 비행기는 대부분 유엔기이다. 우리는 콩고의 유엔미션인 MONUSCO비행기와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서 운행하는 유엔인도주의항공서비스(UNHAS) 비행기를 대부분 이용한다.

 UNHAS 비행기

오늘 탄 MONUSCO 비행기

비행기는 10명 남짓 들어가는 아주 소형비행기도 있고, 오늘 내가 탄 비행기는 3좌석씩 11줄이 있어 정원이 33명인 비행기였다.


(예상대로) 좌석에 티비는 없고 큰 비행기보다는 롤러코스터가 심하다. 작은 비행기 일수록 '정말 내가 지금 바이킹을 타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심하게 흔들린다.

아 참 공항 풍경! 이라고 해봐야 정말 민망할 정도로 별거 없다.

공항 입구에는 이런 표지판이 있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출입이 잦아서 그런지 '무기반입금지' 표지가 우리를 반긴다.

공항 입구 풍경. '공항'이라고 해서 인천공항을 떠올린다면 부니아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공항이 어디냐고 물을 확률이 높다. 건물은 1층에 duty free shop이 있을리가. 대신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테리아는 있다..!

비행기 일정표. 오늘은 4대 운영하나보다. 체크인 시간은 출발 전날 알 수 있다.


가방은 항상 20kg미만이어야 한다. 여기는 가방 검사 후, 터미널 요금을 낸 후 들어가는 대기실이다. 오늘은 방글라데시 평화유지군이 유난히 많았다.

부니아에 있는 평화유지군은 방글라데시 군이 대부분이다. 그래수 화장실 표지판은 뱅갈어로 추정되는 글씨로 적혀있다.

부니아 공항 전경. 그렇다 이게 '전'경이다. 언뜻보면 어느 시골 마을회관 같아 보이기도 한다.